쾰른 대성당의 첨탑을 보며, 인간은 왜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는가
독일 쾰른 중앙역에 내리는 순간, 여행자는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와 마주하게 됩니다. 고개를 완전히 젖혀야만 겨우 그…
독일 쾰른 중앙역에 내리는 순간, 여행자는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와 마주하게 됩니다. 고개를 완전히 젖혀야만 겨우 그 끝을 볼 수 있는 검은 첨탑,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정교하고 장엄한 고딕 양식의 파사드. 바로 쾰른 대성당(Kölner Dom)입니다. 그 앞에 서면 우리는 말문이 막히고,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는 신비로운 감각에 휩싸입니다. 우리는 이 감정을 ‘경외감(Awe)’이라고 부릅니다.
경외감이란 단순한 감탄이나 놀라움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거대한 대상 앞에서 느끼는 존경심과 숭고함,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인간은 왜 스스로를 작고 미약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이토록 강렬하게 끌리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쾰른 대성당을 통해, 경외감이라는 감정이 우리의 잠재의식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깊이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Table of Contents
632년의 기다림, 신을 향한 인간의 염원
쾰른 대성당의 경이로움은 그 규모뿐만 아니라 시간에 있습니다. 1248년 첫 공사가 시작되어 무려 632년이 흐른 1880년에야 완공되었습니다. 수십 세대에 걸친 사람들이 자신의 생에서는 결코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돌을 깎고 쌓아 올렸던 것입니다.
이 632년이라는 시간은 대성당을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신을 향한 인간의 염원과 믿음이 응축된 하나의 거대한 상징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 돌 하나하나에 깃든 수많은 사람의 땀과 기도, 그리고 인내를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느끼는 경외감은 바로 이 인간 정신의 위대함에 대한 감동이기도 합니다.
‘숭고미’와 ‘경외감’의 심리학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아름다움(Schön)과 별개로 ‘숭고미(Erhaben)’라는 개념을 이야기했습니다. 숭고미란 거대한 폭풍이나 끝없는 사막, 그리고 쾰른 대성당처럼 우리의 이해력이나 감각을 초월하는 압도적인 대상 앞에서 느끼는 미적 체험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압도하여 두렵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정신이 그 거대함을 사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합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 경외감을 두 가지 요소로 설명합니다.
- 지각적 거대함 (Perceptual Vastness): 나의 기존 지식 체계를 훨씬 뛰어넘는 거대한 무언가와 마주하는 경험.
- 개념의 순응 (Need for Accommodation): 그 새로운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정신적 틀(스키마)을 수정하고 확장하려는 노력.
쾰른 대성당은 이 두 가지 요소를 완벽하게 충족시킵니다. 눈앞의 물리적 거대함은 물론, 632년이라는 시간의 거대함, 그 안에 담긴 신앙의 거대함은 우리의 정신적 틀을 뒤흔들고 확장하게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일상의 작은 ‘나’에게서 벗어나 더 큰 존재와 연결되는 듯한 깊은 감동과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첨탑,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빛: 경외감을 극대화하는 건축적 장치
쾰른 대성당은 인간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천재적인 건축적 장치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 하늘을 찌르는 첨탑: 157m에 달하는 두 개의 첨탑은 우리의 시선을 끊임없이 위로, 즉 하늘과 신을 향하도록 이끕니다.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우리의 정신만은 세속을 벗어나 초월적인 세계를 갈망하게 만듭니다.
- 어둠과 내부의 높이: 성당 내부는 외부의 밝음과 대조적으로 어둡고 장엄합니다. 43m에 달하는 아치형 천장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아, 그 아래에 선 우리를 미미한 존재로 만듭니다. 이 ‘자아의 축소’ 경험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더 위대한 힘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게 합니다.
- 스테인드글라스와 빛: 어두운 내부를 밝히는 것은 평범한 빛이 아닙니다. 다채로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며 색과 의미를 부여받은 ‘성스러운 빛’입니다. 이 비현실적인 빛은 공간을 신비로운 분위기로 가득 채우며, 방문객들을 일상적 시공간에서 분리해 명상과 사색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결론: 나를 넘어서는 위대한 경험
쾰른 대성당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은, 우리가 단지 아름다운 건물을 보고 있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내 안의 잠재의식이 시간과 역사,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정신과 교감하는 순간입니다. 스스로가 작게 느껴지는 그 순간, 우리는 역설적으로 가장 크게 확장됩니다. 일상의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찼던 ‘나’라는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 인류와 역사, 그리고 숭고함이라는 더 거대한 세계의 일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행을 통해 압도적인 자연이나 위대한 예술 작품을 찾아 나서는 이유는, 어쩌면 이 경외의 순간을 통해 나를 넘어서는 위대한 경험을 하기 위함일지도 모릅니다. 쾰른 대성당은 바로 그 경험을 위한 가장 완벽한 장소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