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피곤할 때 이 도시로
몸이 아플 땐 병원을 찾고, 마음이 지칠 땐 친구를 찾습니다. 하지만 감정이 피곤할 땐—설명할 수 없는 무력감이나 말로…
몸이 아플 땐 병원을 찾고, 마음이 지칠 땐 친구를 찾습니다. 하지만 감정이 피곤할 땐—설명할 수 없는 무력감이나 말로 하기 힘든 무거움이 있을 땐, 우리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요? 저는 그럴 때 한 도시를 떠올립니다. 독일의 소도시 프라이부르크(Freiburg). 이곳은 감정을 쉬게 해주는 도시였습니다. 무언가를 하거나 치유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그저 그 공간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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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피곤하다는 건 무엇일까
감정이 피곤하다는 건, 슬프거나 힘들다기보단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를 말합니다. 일상 속 크고 작은 감정노동, 표현하지 못한 말들, 미처 풀어내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차곡차곡 쌓일 때 감정은 무거워집니다. 그런 피로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 같지만, 사실은 어느 순간 폭발하거나 무감각해져 버립니다.
그래서 감정이 피곤할 때는 무조건 쉬어야 합니다. 그것도 억지로 감정을 해결하려는 방식이 아닌, 그냥 감정을 가만히 놔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프라이부르크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프라이부르크, 감정에게 공간을 허락하는 도시
프라이부르크는 블랙 포레스트 초입에 위치한 소박한 도시입니다. 화려하지 않고, 유명한 명소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조용함과 느림의 미학이 감정을 자연스럽게 풀어줍니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감정을 재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날 오후, 도시 외곽의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멀리서 들리는 자전거 벨 소리, 고요히 흐르는 냇물. 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무관심 속에서 깊은 위로를 느꼈습니다. 그 순간, 제 감정은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감정을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 곳
도시가 줄 수 있는 위로는 꼭 커피 한 잔이나 멋진 풍경이 아닙니다. 오히려 프라이부르크처럼 ‘그냥 있어도 되는 분위기’가 더 큰 힘이 됩니다. 카페에 앉아 멍하니 사람들을 바라보고, 조용한 거리에서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고,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 이 모든 행동은 감정을 정리하려는 노력 없이도 감정을 쉬게 만들어 줍니다.
저는 프라이부르크의 어느 작은 광장에서 그렇게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무 말도, 아무 계획도 없이. 그런데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 무거웠던 감정들이 조금 가벼워져 있었습니다.
피로한 감정을 위한 도시의 조건
감정이 피곤할 때 필요한 도시는, 우리에게 어떤 역할도 요구하지 않는 곳입니다. 화려한 풍경도, 바쁜 관광 일정도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조용하고, 느리며, 나를 놓아줄 수 있는 도시—그곳이야말로 감정을 회복시키는 공간입니다.
프라이부르크는 그런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정이 피곤해졌을 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도시’라는 점에서 더 특별했습니다.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도시
감정이 피곤한 상태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프라이부르크에서 보낸 며칠 후, 저는 아주 사소한 것에 웃고, 어떤 노래에 가슴이 울컥하고, 오래된 엽서를 보며 감동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감정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